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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기다렸던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축제의 개막 첫 작품, 연극 '당나라 승려'가 올려졌다. 광주시민으로서 참 감개무량하다. 아시아 동시대예술을 지향하는 예술극장의 개관 페스티벌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개막 첫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예술극장의 미래 지향적 가치 등을 예측해 볼 수 있으니까.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시대마다 인류는 어떤 새로운 형태, 마음을 잡아끄는 예술을 갈망해 왔다. 이 시대는 문화전당이 발 벗고 그 길을 찾아 나선 셈이다. 이런 사조와 연관해 필자는 현재 세계의 종합예술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발전된 공연이 무어냐는 질문을 던지고, 라스베가스 카쇼(K Show), 오쇼(O Show), 중국의 인상시리즈(이중 印象西湖) 등을 꼽았다. 그리고 몇 차례 글을 써왔다. 이 작품들을 들춰낸 것은 동시대예술의 가치 측면에서 '당나라 승려'를 이들과 비교하기 위함이다. 먼저 세 작품은 일반인 상상을 뛰어넘은 혁신적으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수 천 억 들인 대작으로 큰 인기를 끈다. 그러나 메시지가 약한 게 흠이다. 즉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짙다는 얘기다. 반면 '당나라 승려'는 공연요소들이 혁신적이며, 현재 인류가 처한 문제들을 지적해, 메시지가 강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당나라 승려' 감독 챠이밍량(蔡明亮)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대표적 감독이며 시간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이 천착해 왔다. 그는 현대의 빠른 속도(시간의 문제)를 보면서 발전이 아니라 쇠퇴와 붕괴라 한다. 그 대안이 시간과 속도의 미학이고 세상으로부터 강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갖지 못함과 자연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모델로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를 내 세웠다. 현장은 성스러운 이상주의자로 높이 평가 받지만, 감독은 천여 년 전 홀로 불경을 찾아 수천마일 국경을 넘은 인도의 왕복에 관심을 둔다.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한 외로운 여정이 가장 감동적이며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시간과 고통의 흔적이라 했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오로지 걷기만 했던 위대한 승려로 떠오른다고 했다.

 '당나라 승려'의 작품 구성은 아주 간결 하다. 연극이지만 공연장 바닥에 깔아 논 가로 8m, 세로 4m의 흰 종이가 전 무대다. 이 백지 위에서 승려와 드로잉 화가가 펼치는 시간과 느림에 대한, 2시간이 넘는 무언의 대화(퍼포먼스)가 주고, 3명의 보조 퍼포머의 활동이 추가된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의 연기와, 연극과 드로잉·음악의 만남을 통해 인류의 심오한 문제를 다룬 점이 이 작품의 혁신이다. 혁신을 하나 더 들면, 아시아예술극장의 가변성이 잘 활용된다. 공연이 시작되자 어둠이 깔리고 야외 공연장과 차단된 막(벽)을 걷어 제친다. 드러난 하늘과 앞의 나무와 건물, 조명 등이 조화를 이뤄 우주의 한 가을 저녁 공간, 즉 연극의 배경을 연출해 낸다.

개막 10분전쯤 입장하니 빨간색 승복의 웬 승려(대만의 유명 영화배우 李康生)가 공연장 바닥의 흰 종이 위에서 자고 있다. 관객은 임시로 제작된 계단식 좌석에 안내된다. 행여 일어날까 했으나 미동도 없다. 조명이 나가고 야외 공연장 차단막이 걷힌다.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거친 듯 한 우리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가 들려온다. 고요하면서 약간 슬픈 분위기다. 키가 훤칠한 젊은이(대만의 독특한 드로잉 작가)가 들어와 승려 발밑 쪽부터 검정 숯 같은 것으로 (독)거미를 그려 나간다. 그의 손놀림은 서두른 기색 없이 일정하다. 30여분 동안 크고 작은 거미 23마리를 그리고 10마리는 문질러 형체를 없앤다. 거미들 촉끼리 선으로 연결하고 승려의 몸체와 잇는다. 이제는 백지 위를 검정색으로 칠해나간다. 마지막에 승려머리 위에 나무를 그린다. 검정 칠은 밤이고 거미, 나무들은 승려(일반사람)의 꿈을 형상화한 것일까. 그리기가 끝나고 승려가 일어났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60여 분이 걸렸다. 그 동안 어떤 관람객은 재미가 없는지 나가버렸다. 시간과 느림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먼저 그린 그림은 열두 번을 접어 가로ㆍ세로 1m 방석같이 만들어 다음 백지 위에 놓여진다. 승려는 그림 방석위에 앉아 그의 일상을 벌이다, 일어나 방석 위를 천천히 걷는다. 귀에 익은 팝송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다음 백지에 드로잉은 다시 시작됐다. 남녀 셋이 그리는 선들은 산과 강, 자연을 형상화 한 것 같다. 그러나 수개의 선들이 중첩되니 무의미한 선들로 보인다. 승려는 이 전지의 그림(선) 위를 관객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이강생 특유의 느린 걸음을 걷는다. 과자 한 조각을 먹는 동안 드로잉 작가의 바닥 두드리는 소리(목탁)가 들리고, 승려는 자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무상함을 얘기한 것이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세상은 천천히 움직였다.

정창재 지역문화예술 평론가ㆍ전 광주문화예술회관 관장